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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9.3.30 시론 - 3기 신도시에 바란다 / 김영욱

관리자 2019.04.24 16:10 조회 402

원문 링크) http://news.donga.com/Top/3/all/20190330/94807713/1


고독사-자살 등 세계 최고 병리현상

블록 크고, 고층 위주, 계층별 분리 등 ‘이웃과 단절’ 조장하는 도시공간 탓

도시건설은 우리 삶과 사회 만드는 일, 이제는 ‘소통하는 공간’ 조성 실천해야


층간소음 갈등으로 이웃을 칼로 찔렀다는 뉴스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이웃 간 갈등 외에도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세대 및 집단 간의 갈등, 고독사, 자살 등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사회적 병리현상을 겪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공동체의 와해에 따른 사회적 통합의 약화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사회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빌 힐리어는 도시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커뮤니티가 살아날 수도 있고, 사회가 분열할 수도 있으며,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고, 상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했다. 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더 심각해지는 방향으로 도시와 주택단지를 만들어왔다. 지금과 같은 이웃과의 단절을 조장하는 도시공간에서는 소통과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는 이러한 도시 건설을 멈추어야 한다.


도시공간을 만드는 현재의 방법에는 공동체 형성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있다. 그중 몇 가지를 거론해 보자. 첫째, 블록(시가지 등의 일정한 단위를 합한 구획)을 너무 크게 만든다. 유럽에는 일반적으로 블록을 가로세로로 150m 내외, 50∼100m 정도 크기로 구성한다. 도심에서는 더 작은 경우도 많다. 반면 우리의 도시는 하나의 블록이 500m 이상인 경우도 많다. 블록이 커지면 차도의 폭이 넓어지고 덩달아 차량 속도도 빨라지며 횡단보도도 넓어진다. 길을 건너기가 부담스럽다. 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집 앞이 6차선, 8차선인 경우도 많다. 유럽에서는 도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로가 4차선 이하다. 작은 블록으로 도시를 구성하니 도로 하나하나의 폭이 넓지 않다. 당연히 차량의 속도가 줄고 보행자는 횡단보도가 넓지 않아 길을 건너기 쉽다. 사람이 편하게 길을 건너니 동네 상권이 활성화된다. 자연스럽게 동네 길이 살아나고 보행이 활성화되는 사람 중심의 도시가 된다. 


둘째, 고층 위주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구성한다. 유럽에서는 도심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층 고밀도 주택단지를 조성한다. 동일한 땅 면적에 같은 가구 수의 아파트를 짓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는 고층으로 띄엄띄엄 배치하고 유럽은 중저층으로 건물을 서로 붙여서 주택 단지를 구성한다. 일반 건물도 마찬가지다. 중저층 위주로 도시를 구성하면 아늑함이 느껴지는 거리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더 많이 걷게 된다. 우연한 마주침의 기회가 더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반이 만들어진다.


셋째, 계층별로 분리하는 단지를 만든다. 도시에는 다양한 계층,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살아야 한다. 서로 이웃하여 서로의 존재를 공감하고 공간을 공유하도록 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길이나 광장, 공원, 부대시설에서 서로 부지불식간에 만나게 해야 한다. 저소득층, 청년, 신혼부부, 노인 등 분리된 주택 단지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득, 연령, 신분 등으로 구분해 공간적으로 격리시키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이 바로 사회 통합의 시작이다. 


우리는 세종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시를 건설해 왔으나 그동안 만들어온 도시의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공동체 윤리보다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효율성이 우선하는 도시를 만들어 왔다. 이제는 사회의 공동선을 지켜나가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도시를 만드는 데는 사회의 저항이 클 것이다. 대규모 블록으로 택지를 분양하고 대형 건설사와 대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에 익숙해 있다. 소비자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동 간격이 널찍해 조망 확보가 우수한 단지, 이웃과 만날 필요가 없게 하는 단지,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는 고층 위주의 주택 단지를 선호할 것이다.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게 하는 도시공간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극대화하는, 소통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도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를 시장의 선택의 문제로만 방치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사회적 병리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신속한 주택 공급의 논리로 관행적인 도시 만들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갈등이 줄어들어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시민이 행복해진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